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 이후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가 처음으로 4만명을 넘어섰다. 피해 사례는 임차보증금 3억원 이하 계약에 집중됐고, 주택 유형별로는 다세대주택 비중이 가장 높았다. 연령별로는 40세 미만 피해자가 전체의 4분의 3을 넘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세 차례 열어 총 1798건을 심의한 결과 658건을 전세사기피해자 등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3년 6월 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 이후 누적 인정 건수는 4만936건으로 늘었다.
심의 6만9416건 중 59%가 피해자로 인정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처리한 안건은 모두 6만9416건이다. 이 가운데 전세사기피해자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 피해자로 인정된 비율은 59.0%다.
지난달 새로 인정된 658건 가운데 627건은 신규 신청 또는 재신청 사례였고, 31건은 기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다시 심의를 거친 사례였다.
반면 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된 사례는 누적 1만6193건이었다. 보증보험이나 최우선변제금 등을 통해 임차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어 특별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도 7056건으로 집계됐다.
전세사기피해자 인정은 단순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별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정부 지원 대상이 된다. 따라서 전체 접수·처리 건수와 최종 피해자 인정 건수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피해자 97.6% 보증금 3억원 이하…다세대주택 비중 가장 높아
피해자들의 임대차 계약 규모를 보면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주택에서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피해자의 97.6%는 임차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계약이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피해자가 전체의 60.7%를 차지했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임대차 거래가 많은 수도권에 피해가 집중돼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주택 유형에서는 다세대주택이 28.5%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이어 오피스텔이 20.9%, 다가구주택이 18.7%, 아파트가 13.3% 순이었다.
- 다세대주택 28.5%
- 오피스텔 20.9%
- 다가구주택 18.7%
- 아파트 13.3%
연령별 피해 분포도 뚜렷하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40세 미만이 차지하는 비율은 76.0%에 달했다. 전세를 통해 처음 독립하거나 주거를 마련하는 청년·청년층 임차인에게 피해가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보증금 보호와 임대인 정보 확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1만718가구
피해자 주거 지원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한 전세사기 피해주택도 1만가구를 넘어섰다. 지난달 말 기준 누적 매입 규모는 1만718가구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LH가 매입한 피해주택은 5727가구로 집계됐다.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716가구가 매입된 셈이다.
정부는 피해자가 살던 주택을 LH가 경매 등을 통해 매입한 뒤 기존 임차인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경매차익은 피해자의 보증금 손실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매입된 피해주택의 임차인은 경매차익을 보증금으로 전환해 기존 주택에서 최대 10년간 계속 거주할 수 있다. 당장 다른 주택으로 이사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면서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방식이다.
국토교통부와 LH는 피해주택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매입점검회의와 패스트트랙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법원과 경매 절차 진행을 협의하는 등 실제 매입으로 연결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한 절차도 추진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제공된 주거·금융·법률 지원은 지금까지 누적 7만7805건으로 집계됐다. 긴급하게 경매나 공매 절차를 미뤄달라고 요청한 사례는 누적 1225건이다.
보증금 안 돌려준 임대인, 3개 보증기관이 함께 관리
피해 발생 이후의 지원뿐 아니라 신규 전세 계약 단계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보증제도도 바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보증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지급한 임대인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임대인 보증금지 정보 공유’ 제도를 공동 시행한다.
기존에는 각 보증기관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정보를 기준으로 보증 가입 여부를 심사했지만, 앞으로는 한 기관에서 대위변제가 발생한 임대인 정보가 다른 보증기관에도 전달된다.
대위변제는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을 때 보증기관이 임차인에게 먼저 보증금을 지급한 뒤 임대인을 상대로 해당 금액을 회수하는 절차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임대인이 보증기관 한 곳에라도 갚지 않은 보증금이 있을 경우 HUG·HF·SGI 세 기관 모두에서 해당 임대인이 소유한 주택의 전세·임대보증 가입이 제한된다.
보증기관들은 보유 정보를 한국신용정보원에 전달하고, 한국신용정보원이 이를 통합해 다시 각 보증기관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미반환 임대인에 대한 보증 가입 제한은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임차인은 이에 앞서 9월 21일부터 HUG 안심전세 앱의 임대인 정보조회 기능을 통해 계약하려는 주택의 임대인이 보증 가입 제한 대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누적 4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정책의 초점도 피해 발생 이후 구제뿐 아니라 위험 임대인을 사전에 걸러내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전세계약을 준비하는 임차인에게는 주택의 권리관계뿐 아니라 임대인의 보증사고 이력과 보증 가입 가능 여부를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