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 절차…아시아나 통합 서열 충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앞두고 조종사들의 승진 순서를 결정하는 시니어리티가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협약 교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 절차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어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앞두고 노사 협상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인사 순위 문제가 아니다. 항공사 조종사에게 시니어리티는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격하는 순서와 연결되며, 기장 임명 시점에 따라 임금 체계와 각종 수당에도 영향을 미친다. 별도의 기준으로 조종사 인력을 운영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하나의 회사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양사의 기존 서열을 어떤 원칙으로 연결할지가 쟁점이 된 이유다.

30차례 교섭에도 합의 못해 노동쟁의 조정 신청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지난 9월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노조에 따르면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협약을 두고 회사와 30차례 교섭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한 것은 2015년 12월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에도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회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이듬해인 2016년 12월 7일 동안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 필요한 절차를 충족하면 다시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노동쟁의 조정 신청이 곧바로 파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위원회의 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다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으며 합의가 성립하면 쟁의행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노조 설명에 따르면 조정 기간은 신청일로부터 15일이고 노사가 합의하면 15일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

노조는 앞서 지난 4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이번 노동위원회 조정이 최종적으로 성립되지 않을 경우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대한항공 본사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등을 포함한 장소에서 집회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조정 신청에는 조종사 서열 문제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임금 인상과 장시간 비행 이후 휴식시간, 비행수당 산정 기준 등도 협상 안건이다. 노조는 임금 3.3% 인상과 10시간 이상 비행 후 현지 30시간 휴식을 전 노선에 적용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종사 시니어리티가 중요한 이유는 기장 승격 때문

이번 노사 갈등을 이해하려면 항공업계에서 사용하는 시니어리티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종사 조직에서는 내부 서열이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올라가는 승격 순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기장으로 승격하는 시점은 단순히 직책 하나가 변경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장 임명 시기는 기본급 체계뿐 아니라 선임기장과 수석기장 관련 수당이 계산되는 시작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승격 순서가 달라지면 조종사가 장기간 받는 보수에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문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지금까지 서로 독립된 회사로서 각각의 기준에 따라 조종사 서열을 운영해왔다는 데 있다. 두 항공사가 합병되면 기존에 별도로 관리하던 조종사 인력 역시 하나의 조직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회사 출신 조종사가 먼저 기장 승격 기회를 얻을 것인지와 기존 경력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민감한 문제로 연결된다.

대한항공은 통합 이후에도 양사 조종사들이 각 회사에서 가지고 있던 기존 내부 상대서열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 출신 조종사의 기존 기장 승격 요건과 내부 순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의 기존 경력과 자격도 인정해 통합 과정의 혼란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회사 측은 외부 컨설팅 등을 거쳐 대한항공 조종사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승진 서열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양사의 군 경력 조종사와 민간 경력 조종사가 각각 가지고 있던 내부 서열을 유지함으로써 통합에 따른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겠다는 설명이다.

반면 노조는 양사의 기존 서열을 단순히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서로 다른 채용과 경력 기준을 거쳐 형성된 서열을 하나의 회사에서 적용할 경우 대한항공이 기존에 적용해온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가 대한항공 출신보다 승격 순서에서 앞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양사 조종사의 기존 경력과 내부 질서를 최대한 인정하는 통합 방식이고,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서로 다른 조건으로 만들어진 두 서열을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하나의 승진 체계에서 운영하느냐다.

단체협약과 인사권 놓고 대한항공 노사 해석도 엇갈려

시니어리티를 누가 결정할 권한을 갖는지를 놓고도 노사 입장이 맞서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을 근거로 조종사 서열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제시하는 근거는 단체협약 제24조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조항에는 회사가 노사 합의로 정한 운항승무원 서열순위제도를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는 시니어리티 관련 조항이 오래전부터 단체협약에 명문화돼 있었고 이후 단체협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도 유지돼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기존 서열 체계에 변화가 생긴다면 새로운 통합 기준 역시 노사 간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장 승격 순서가 임금과 수당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순한 회사 내부 인사 결정으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의 판단은 다르다. 회사는 합리적인 승진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실제 승진 대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의 고유한 인사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 기장 승격 문제와 관련해 회사의 인사권을 인정한 법원 판단도 있다는 것이 사측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통합 이후에도 대한항공 출신 조종사의 기존 기장 승격 요건과 내부 상대서열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합병으로 인해 기존 조종사의 근로조건이 불리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합 승진 서열 문제를 노동쟁의 조정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이러한 회사 측 주장에도 반박하고 있다. 과거 법원의 결정과 현재 진행되는 양사 합병에 따른 서열 통합 문제는 성격이 다르며, 기존 단체협약에 서열순위제도를 노사 합의로 정하도록 한 내용이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개정 노동조합법을 둘러싼 해석 문제도 더해졌다. 노조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관련 범위가 확대된 만큼, 기장 승격과 보수에 영향을 미치는 통합 서열 문제 역시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회사는 조종사들의 기존 승격 요건과 상대서열이 유지되므로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사안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12월 아시아나 합병 앞두고 조정 결과가 첫 분수령

이번 노사 갈등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법적 합병 일정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공식적으로 밝힌 합병기일은 2026년 12월 16일이다.

합병은 대한항공이 존속회사로 남고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흡수돼 소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기일을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자산과 부채, 권리와 의무는 대한항공이 승계하게 된다. 현재 계획대로 절차가 진행되면 연말에는 양사가 법적으로 하나의 회사가 되는 만큼 인력 통합을 둘러싼 기준 마련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조종사 시니어리티 문제는 이 같은 통합 과정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인사 갈등이다. 항공기와 노선뿐 아니라 서로 다른 회사에서 운영하던 직원의 경력과 승진 체계를 함께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종사는 승격 순서와 보수가 연계돼 있어 통합 기준에 대한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현재 단계에서 실제 파업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다. 우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가 진행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회사와 노조가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조정이 최종적으로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는 노조가 확보하게 되는 쟁의권과 이후 노조의 결정이 실제 쟁의행위 여부를 가르게 된다.

쟁의행위가 현실화되더라도 모든 항공편이 일시에 중단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항공운수사업에는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적용되기 때문에 쟁의행위 중에도 노사가 정한 필수유지업무 수준의 운항은 유지된다.

따라서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은 노동위원회 조정 결과와 시니어리티를 둘러싼 노사의 입장 변화다. 임금과 휴식시간, 비행수당을 포함한 임단협 현안에 더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과정에서 조종사 승진 서열을 어떤 원칙으로 운영할 것인지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기일이 12월 16일로 예정된 가운데 조종사노조의 노동쟁의 조정 절차가 먼저 시작되면서 통합 전 노사 협상이 중요한 국면에 들어섰다. 양사의 기존 경력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대한항공의 기존 승격 기준과 통합 후 서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 문제가 노사 합의가 필요한 근로조건인지 회사의 인사권에 속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번 갈등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