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스마트 안경 규제 검토…정부기관·공공시설 보안 쟁점

일반 안경과 비슷한 외형에 카메라와 마이크, 인공지능 기능까지 결합한 스마트 안경이 새로운 개인정보·보안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 연방정부가 정부기관 근무지에서 스마트 안경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공식 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카지노와 공공시설 등에서도 착용자의 안경을 보안 대상으로 바라보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스마트 안경이라는 제품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착용자가 주변 사람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영상과 음성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는 것과 달리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 촬영 기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나 기밀정보를 다루는 장소에서는 기존과 다른 보안 기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호주 정부기관 스마트 안경 제한 검토…촬영·녹음 기능 주목

캐티 갤러거 호주 공공서비스부 장관은 지난 18일 현지시각 호주 공공서비스위원회에 정부기관 내 스마트 안경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제한이 필요할 경우 어떤 상황에서 예외를 인정할 수 있을지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갤러거 장관이 강조한 부분은 스마트 안경 기술 자체보다 사용 사실을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촬영하거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는 특성이다. 정부기관에서는 개인정보와 내부 정보가 오가는 만큼 스마트 안경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새로운 보안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단계에서 호주가 스마트 안경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제품의 수입을 차단하는 조치도 아니다. 정부기관이라는 특정 환경에서 카메라와 녹음 기능을 갖춘 기기를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지 검토하는 단계다.

스마트 안경은 일반적인 안경 형태에 카메라와 마이크 등의 기능을 결합한 웨어러블 기기다. 제품에 따라 촬영과 음성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AI와 연계해 정보를 확인하는 기능도 제공될 수 있다. 스마트폰처럼 손에 기기를 들지 않아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편리함인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는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호주는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규제를 잇달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에는 16세 미만 청소년이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계정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다. 알고리즘과 AI가 이용자의 일상과 정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 안경에 대한 검토 역시 새로운 기술을 실제 생활공간에서 어떤 기준으로 다룰 것인지와 연결돼 있다.

카지노와 공공시설에서도 안경이 보안 확인 대상

스마트 안경을 둘러싼 변화는 정부기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주의 일부 카지노 현장에서는 출입자의 신분증과 출입 조건을 확인하는 보안요원이 고객이 착용한 안경까지 확인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필요할 경우 안경 자체를 살펴보는 상황도 생겼다.

카지노가 스마트 안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설의 특성과 관련된다. 카지노에서는 게임 진행 과정과 카드 등 현장 정보의 관리가 중요하다. 일반 안경과 외형상 큰 차이가 없는 장치에 소형 카메라나 마이크가 탑재될 경우 게임 상황을 몰래 기록하거나 외부에 전달하는 용도로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안경이 시력을 보조하는 개인용품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촬영과 녹음, AI 기능이 결합되면서 보안시설에서는 전자기기의 성격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스마트 안경인지 일반 안경인지 외관만으로 즉시 판단하기 어려운 제품이 등장하면서 현장의 보안 절차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공공시설에서는 보안보다 사생활 보호 문제가 먼저 부각되기도 한다. 브리즈번시는 공공 수영장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할 수 있는 스마트 안경과 같은 장치의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수영장처럼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가 특히 중요한 공간에서는 촬영 기능이 외부에서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같은 스마트 안경이라도 장소에 따라 규제의 목적은 달라진다. 정부기관에서는 개인정보와 기밀정보 보호가 핵심이고, 카지노에서는 게임의 공정성과 시설 보안이 중요하다. 수영장과 같은 공공시설에서는 이용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촬영될 가능성이 주요 쟁점이 된다.

한국 시험장에서는 스마트 안경 부정행위 잇따라 적발

한국에서는 스마트 안경이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주목받았다. 올해 5월 토익 정기시험에서 스마트 안경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 2명이 적발됐다. 해당 시험은 무효 처리됐으며 적발된 응시자들에게는 4년간 응시자격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확인됐다. 5월과 6월 두 달 동안 소방설비기사, 정보처리기사, 전기산업기사 등 여러 종목에서 전자기기를 활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됐으며 두 달 사이 확인된 사례만 5건이었다.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기존 전자기기 사용과 다른 점은 기기의 형태에 있다. 스마트폰이나 별도의 촬영장비와 달리 일상적인 안경처럼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 감독 과정에서 즉시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시험장에 반입되는 전자기기를 관리하던 기존 방식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이 등장한 셈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도 전자기기를 활용한 국가기술자격시험 부정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규정 개정에 나섰다. 기술 발전으로 시험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기의 종류와 형태가 달라지면서 감독과 제재 기준 역시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호주의 정부기관·카지노·공공시설과 한국의 시험장은 스마트 안경을 경계하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외부에서 촬영이나 기록 여부를 알아보기 어려운 웨어러블 기기가 기존 보안과 감독 체계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전면 금지가 어려운 이유…보조기기와 산업 활용은 예외 쟁점

스마트 안경 규제가 복잡한 또 다른 이유는 해당 기술이 보안 위험만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스마트 안경은 주변 정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조기기가 될 수 있고, 산업 현장에서도 작업 정보를 확인하거나 안전을 지원하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장소에서 스마트 안경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면 필요한 이용자와 정상적인 산업 활용까지 제한할 수 있다. 호주 정부가 사용 제한 필요성과 함께 예외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검토하도록 한 배경이다.

향후 핵심은 장소와 기능에 따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만드는 데 있다. 카메라가 없는 웨어러블 안경과 촬영 가능한 제품을 동일하게 취급할 것인지, 의료·장애 보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어떤 예외를 인정할 것인지, 촬영 기능을 꺼놓은 상태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등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해진다.

특히 스마트 안경은 외관만으로 일반 안경과 구별하기 어려워질수록 기존의 스마트폰 중심 보안 규칙과 다른 접근이 요구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기기를 들어 촬영하는 행동을 주변 사람이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안경 형태의 장치는 착용 상태 자체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의 이번 검토는 스마트 안경의 판매나 소유 자체를 막는 문제가 아니라 촬영과 녹음 기능을 가진 웨어러블 기기를 민감한 공간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기관에서는 보안, 공공시설에서는 사생활, 카지노와 시험장에서는 공정성이 각각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했다.

스마트 안경의 기능이 확대될수록 이용자 편의와 주변 사람의 권리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호주 공공서비스위원회의 검토에서는 정부기관의 구체적인 제한 범위뿐 아니라 장애인 보조기기와 업무상 필요한 장비 등에 어떤 예외를 적용할지가 중요한 확인 대상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