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입주 시점에 맞춰 도로와 철도 등 광역교통시설을 갖추려면 현행 사업 절차부터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경기도에서 나왔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광역교통사업에 적용되는 예비타당성조사와 보상 절차 등이 신도시 사업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국회와 중앙정부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경기도가 제시한 방향은 단순히 주택 건설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통시설을 먼저 확보하는 이른바 ‘선교통·후입주’를 현실화하고, 기업과 일자리를 함께 유치해 3기 신도시의 자족 기능까지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광역교통, 토지 보상, 기업 이전, 지방정부 참여 등 사업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를 토대로 13개 제도개선 과제를 마련했다.
추미애 “선교통·후입주, 현 제도로 사실상 불가능”
추 지사는 9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정부 8·13 대책 후속, 3기 신도시 자족강화와 신속 추진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선교통·후입주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심 문제로 지목한 것은 광역교통시설의 사업 절차다. 신도시 입주에 필요한 교통대책이 마련돼 있더라도 실제 철도나 도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교통시설 구축과 주택 입주 시점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 지사는 광역교통시설을 추진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칠 경우 1∼2년, 경우에 따라 3∼4년의 시간이 지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도시 개발계획 단계에서 교통대책을 함께 마련했다면 이후 해당 교통사업에 다시 장기간의 절차가 적용되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도가 앞서 검토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건설사업 등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경기도는 이 과정에 통상 1∼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 철도사업의 경우 사업기간을 최소 1년 이상 단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공공주택지구의 광역교통개선대책으로 이미 확정된 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방안을 주요 제도개선 과제에 포함했다. 추 지사는 신도시를 계획할 때 교통대책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신도시와 연계된 교통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근거를 법률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3개 제도개선 과제, 교통뿐 아니라 보상·기업이전까지
경기도가 국회와 중앙정부에 제시한 제도개선 과제는 모두 13개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방안은 광역교통시설 구축 속도뿐 아니라 공공주택지구 사업 전반에서 시간이 지연되는 원인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표적으로 토지와 건축물 보상 과정에서 필요한 관련 서류를 전산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주택을 실제로 건설하기에 앞서 토지 확보와 보상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보상 단계에서 발생하는 행정 소요기간 역시 전체 사업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경기도는 관련 자료의 전산 활용을 통해 이 절차를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지방정부의 공공주택사업 참여와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추 지사는 경기도에서 진행되는 공공주택사업인 만큼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기관의 역량에 맞게 사업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 이전 문제도 주요 과제다. 공공주택지구 지정으로 기존 기업이 이전해야 하는 경우 주택지구 지정 단계부터 이전 대상 기업과 이전단지 계획을 함께 마련하고, 공공주택지구와 기업이전단지를 동시에 지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주택 건설과 기업 이전을 별개의 후속 절차로 처리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업 지연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들 과제는 9월 4일 열린 관련 대책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경기도는 정부의 8·13 주택 신속공급 방안이 실제 공공주택지구 사업 현장에서 공급 속도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기존 행정절차와 사업 구조에서 발생하는 병목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택만 짓는 신도시 아닌 일자리 갖춘 자족도시 논의
이번 정책토론회의 또 다른 축은 3기 신도시의 ‘자족 기능’이었다.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신도시 내부 또는 주변에서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 지사는 경기도가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기업 추천권 등을 활용해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신도시 내부의 일자리 기반이 확대되면 입주민의 서울 출퇴근 수요를 줄이는 데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가 제시한 방향이다.
이는 광역교통 문제와도 맞물린다. 대규모 주택 공급 이후 상당수 주민이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한다면 신도시와 기존 도심을 연결하는 교통망에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 반대로 주택과 함께 업무·산업 기반을 확보하면 도시 내부에서 일정 부분 일자리 수요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족 기능과 교통대책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다.
토론회에는 국회와 경기도뿐 아니라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기연구원 등 신도시 사업과 관련된 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정부의 주택 신속공급 정책이 실제 사업 현장에서 속도감 있게 집행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과 주택 공급에 맞춰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확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토론회는 이재정·서영석·김성회·김용민·김현·이광재·안태준·한준호·차지호·김남국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경기도와 GH가 주관했다. 경기도는 이날 논의된 의견과 13개 제도개선 과제를 국회와 정부에 제시하고 LH, GH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고양 창릉 첫 입주 앞두고 사업 현장도 점검
정책토론회에 앞서 추 지사는 같은 날 오전 고양 창릉 공공주택지구를 방문했다. 현장에서는 주택건설 진행 상황과 함께 군부대 이전, 토양 정화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점검됐다.
고양 창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원에 조성되는 3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다. LH가 앞서 공급한 고양 창릉 A4·S5·S6 블록 가운데 A4 블록은 2027년 12월, S5와 S6 블록은 2028년 1월 입주 일정이 제시된 바 있다. A4 블록의 2027년 12월 입주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이번 제도개선 논의는 실제 입주 일정과 교통·기반시설 구축 시점을 맞추는 문제와도 직접 연결된다.
고양 창릉에는 GTX-A 창릉역도 계획돼 있다. LH가 공개한 공급 자료에서는 창릉역 개통 예정 시점을 2030년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택 입주와 주요 광역교통시설 완성 시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경기도가 강조하는 ‘선교통·후입주’ 문제가 실제 신도시 입주민의 생활과 연결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다만 경기도가 제시한 13개 과제는 현 단계에서 제도개선 요구안이라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을 실제 적용하려면 관련 법률과 제도를 검토하고 국회와 중앙정부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경기도 역시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정부와 국회에 제도개선을 건의하고 관계기관과 협의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이번 논의의 핵심은 3기 신도시의 주택 공급 일정만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교통, 보상, 기업 이전, 지방정부 참여 등 여러 사업 절차를 주택 입주 시점과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있다. 경기도가 제시한 13개 과제가 국회와 정부의 후속 논의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반영될지가 향후 3기 신도시 사업 속도와 선교통·후입주 실현 여부를 가를 주요 변수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