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오는 12월 17일로 예정된 가운데, 법인 결합 이후 실제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주에서는 양사 직원 180여 명이 합동 안전·보안 캠페인을 열며 ‘원팀’을 강조했지만, 조직 내부에서는 조종사 선임순위와 협력사 고용 문제가 남아 있고 승객 측에서는 마일리지 전환과 노선별 공급좌석 유지 여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통합의 성패가 단순한 회사 규모 확대가 아니라 사람과 서비스,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하나의 기준으로 묶느냐에 달렸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기 시작한 뒤 국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쳤고,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올해 5월에는 양사가 합병계약을 체결했으며 합병기일은 12월 16일, 통합 대한항공 출범은 그 다음 날인 17일로 예정돼 있다.
제주서 먼저 시작한 ‘원팀’, 실제 통합은 공항 현장이 시험대
대한항공 제주여객서비스지점과 아시아나항공 제주공항서비스지점은 지난 8일과 10일 한라생태숲 야외교육장에서 합동 항공안전·보안 캠페인을 진행했다. 제주지역 양사 직원 약 180명이 참석해 항공안전과 보안 관련 퀴즈, 모범 직원 표창, 보안문화 실천 선언 등을 함께했다.
행사에서 강조된 핵심은 ‘원팀’이었다. 하지만 실제 통합은 같은 구호를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두 회사가 하나의 법인이 된 뒤에는 운항과 정비, 객실 서비스뿐 아니라 예약과 발권, 탑승수속, 수하물 처리, 지연·결항 대응까지 서로 다른 체계를 하나로 맞춰야 한다.
특히 항공안전과 보안 분야는 절차와 판단의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항공기 한 편이 운항하기까지 조종사와 객실승무원, 정비, 운항관리, 공항 서비스 등 여러 조직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매뉴얼과 교육, 현장 지휘 방식이 서로 다르면 통합 이후 오히려 혼선이 발생할 수 있어 제도와 조직문화의 일치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제주에서 진행된 합동 캠페인은 이런 점에서 통합 준비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김우철 대한항공 제주여객서비스지점장도 양사 직원이 함께 안전과 보안을 다짐하고 통합의 가치를 확인한 자리였다고 설명하며, 성공적인 통합 항공사 출범을 위해 안전과 보안을 철저히 실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종사 선임순위와 협력사 고용, 조직 통합의 가장 민감한 부분
통합 과정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는 사람의 경력과 자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조종사 사이에서는 이른바 ‘시니어리티’로 불리는 선임순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종사 선임순위는 단순한 서열 문제가 아니다. 기장 승격과 근무 배치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각각 축적한 경력을 어떤 방식으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이번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는 임금과 휴식시간뿐 아니라 합병 이후 조종사 서열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포함됐다. 대한항공은 양사 조종사의 기존 내부 상대서열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기존 대한항공 조종사가 합병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공항 여객서비스 협력업체에서는 고용 문제가 관심사다. 최근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양사 주요 협력업체의 투입 인력을 합병 이후 줄이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고용 조정 우려가 제기됐다. 중복 업무를 정리하거나 일부 업무를 항공사 내부 인력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대한항공은 합병을 이유로 협력사에 업무 조정이나 인력 감축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인력 재배치 범위도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통합 과정에서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공항 현장에서 근무하는 인력의 고용 불안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10년 별도 운영, 제주 노선 좌석도 쟁점
승객이 직접 체감할 변화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처리 방식이다. 기존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합병 이후에도 10년 동안 별도로 운영된다. 고객이 원할 경우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로 전환할 수 있다.
전환 비율은 적립 방식에 따라 다르다. 항공편 탑승으로 적립한 마일리지는 1대 1로 전환되고, 신용카드와 호텔 등 제휴처를 통해 쌓은 마일리지는 1대 0.82 비율이 적용된다. 10년의 별도 운영 기간이 끝나면 남아 있는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스카이패스로 전환된다.
제도가 제시됐다고 해서 소비자 평가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기존 마일리지 가치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보너스 항공권 이용 기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회원 등급과 각종 혜택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가 통합 이후 체감도를 좌우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공급좌석 문제도 이미 쟁점화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을 포함한 5개 항공사는 기업결합 시정명령 대상인 청주~제주 노선에 대해 공급좌석 유지 의무를 완화해달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요청했다.
현재 기준은 2019년 공급좌석의 90%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이를 70% 이상으로 낮춰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와 환율 상승 등을 이유로 올해 시정명령 대상 전체 노선의 공급좌석 유지 의무를 면제하거나 완화해달라는 요청도 제출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권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항공여객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고 보기 어렵고, 기존 시정명령을 변경할 정도의 중대하고 불가피한 사정변경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다만 아직 최종 결정은 아니며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론이 내려질 예정이다.
심의 과정에서는 별도의 조사 방해 논란도 발생했다. 공정위 사무처는 대한항공 본사 현장조사 과정에서 회사와 소속 직원들이 조사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사를 방해했다고 보고 대한항공과 직원 3명을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안 역시 최종 판단은 전원회의에 남아 있다.
통합 효과, 제주에서는 좌석·운임·서비스로 평가받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으로 기대되는 효과도 있다. 중복되는 운항시간을 조정하면 승객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를 재구성할 수 있고, 양사가 각각 운영하던 국내외 네트워크를 연결하면 항공기 운용과 환승 효율을 높일 여지도 있다. 확보된 항공기와 인력을 신규 노선이나 다른 서비스에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통합 효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보다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철도나 고속도로를 이용해 육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는 제주에서 항공편은 관광 수단이면서 동시에 생활 인프라다.
따라서 통합 이후에는 보유 항공기 수나 회사 자산 규모보다 실제 좌석 공급이 얼마나 유지되는지,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선택할 수 있는지, 운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더 직접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하면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국내·국제선 40개 노선에 운임 인상 제한과 공급좌석 축소 금지 등의 조건을 부과한 것도 같은 이유다. 두 대형 항공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드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다.
통합 이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항목은 명확하다. 기상악화나 대규모 결항 때 지휘체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승객 안내와 수하물 처리가 원활한지, 서로 달랐던 교육과 평가 기준이 충돌 없이 정착하는지가 안전과 서비스 측면의 핵심이다.
조직 내부에서는 조종사 경력 인정 원칙과 협력업체 고용 안정이 중요하고, 승객 입장에서는 마일리지 가치와 노선별 좌석, 운임 변화가 직접적인 관심사다. 회사가 얻는 운영 효율이 비용 절감에만 머물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권과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도 함께 평가받게 된다.
12월 17일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한다고 해서 모든 통합 절차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법인을 합치는 작업보다 서로 다른 조직과 운영 기준, 고객 제도를 하나의 체계로 정착시키는 과정이 더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주에서 시작된 ‘원팀’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좌석과 운임, 일자리와 마일리지, 그리고 안전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를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