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에 불법적으로 관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판단이 9월 11일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이날 오후 2시 윤 전 대통령의 범인도피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선고공판을 연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앞선 결심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으며, 윤 전 대통령 측은 호주대사 임명이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이 정상적인 외교·인사 절차였는지, 아니면 당시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피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는지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다. 특검이 제기한 의혹과 윤 전 대통령 측의 반박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어 재판부가 범인도피의 고의성과 관련 공직자들의 역할을 어떻게 인정할지가 주요 쟁점이다.
특검은 왜 ‘범인도피’라고 판단했나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해외로 출국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이 전 장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된 이후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의 수사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해 대사 임명을 추진했다는 것이 특검의 공소 내용이다.
특검이 문제 삼은 시점은 2023년이다. 채상병 사망 사건 이후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 전 장관은 관련 수사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다.
특검은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보내는 과정이 단순한 인사 결정에 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사 임명과 검증, 출국금지 해제, 실제 출국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외교부, 법무부 관계자들이 역할을 분담했다고 보고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인사들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지난 7월 24일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사적·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기관을 움직여 형사사법 절차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검의 공소사실과 법정 주장이다. 윤 전 대통령이 실제로 이 전 장관을 수사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호주대사 임명을 지시했는지, 각 부처의 조치가 범인도피 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이날 1심 판결에서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
윤석열 측은 “방산 협력 위한 정상적 인사” 무죄 주장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의 주장을 전면 부인해왔다.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은 한국과 호주 사이의 방위산업 협력 등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었으며, 대통령에게 부여된 정상적인 인사권 행사였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사 임명 자체를 수사 회피를 위한 도피 조치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방어 논리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전 장관을 해외로 도피시키기 위한 목적이 없었던 만큼 범인도피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에서는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결정이 내려진 경위와 당시 관계자들의 의사소통, 공수처 수사와 출국금지 상황을 윤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함께 다뤄졌다. 법원이 정상적인 인사 절차와 수사 방해 목적의 행위를 어디에서 구분할지가 판결의 핵심이다.
범인도피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피의자가 해외로 출국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피고인이 수사나 형사절차를 피하도록 도울 의도와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가 판단 대상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관련 조치가 그런 목적에서 이뤄졌는지를 놓고 특검과 피고인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조태용·박성재 등 관련 피고인 5명도 함께 선고
9월 11일에는 윤 전 대통령뿐 아니라 이 전 장관의 임명과 출국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직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1심 판결도 나온다.
특검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외교부에 대사 임명 관련 지시를 전달하고, 장호진 전 외교부 1차관과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임명 일정 조율과 검증 과정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에게는 이 전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된 이후 출국금지를 해제하는 과정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도 적용됐다.
특검은 결심공판에서 조태용 전 실장과 박성재 전 장관에게 각각 징역 3년, 이시원 전 비서관과 장호진 전 차관, 심우정 전 차관에게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들에 대한 구형량 역시 확정된 형량이 아니다. 구형은 검사가 재판부에 요청하는 형벌 수준이며 실제 유무죄와 형량은 법원의 선고를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날 판결에서는 각 피고인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인정되는지, 공모 관계가 성립하는지 여부도 함께 확인될 전망이다.
같은 날 윤석열 ‘명태균 여론조사’ 항소심도 결심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형사재판 일정도 소화한다. 오전 11시 서울고법 형사7부에서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혐의와 관련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예정돼 있다.
이 사건에서 윤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명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공모해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명씨로부터 총 2억7000만원 상당의 여론조사 58회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공소사실 가운데 14회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나머지 44회에 대해서는 명씨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직접 결과를 전달하지 않은 만큼 사전에 합의해 제공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건희 여사도 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서울고법 재판부가 심리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는 이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증인신문도 예정돼 있다.
오 시장은 명태균씨가 제공한 여론조사 비용을 후원자가 대신 지급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은 공소사실에 포함된 여론조사 10건 가운데 5건을 오 시장이 명씨에게 의뢰했고, 비용 2100만원을 후원자가 대신 지급했다고 판단했다.
오 시장 측은 해당 여론조사를 실제로 의뢰한 사람이 김종인 전 위원장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1심 판단에 반박해왔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증언이 당시 여론조사 의뢰 관계를 판단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월 11일 법원 일정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오후 2시 예정된 윤 전 대통령의 이종섭 전 장관 호주대사 임명 관련 사건 1심 선고다. 특검이 주장하는 ‘수사 회피 목적의 도피 조치’와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정상적인 외교·인사 결정’ 가운데 법원이 어떤 사실관계를 인정하느냐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리게 된다.
특검의 징역 5년 구형은 판결이 아니라 형량에 대한 요청이며, 현재 윤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 역시 이날 선고 전까지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오후 선고에서는 범인도피 혐의 성립 여부와 함께 대사 임명 및 출국금지 해제 과정에 관여한 관련 피고인들의 책임 범위도 구체적으로 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