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국산 첨단 로봇 규제가 국내 로봇 기업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신규 승인을 받지 않은 외국산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로봇(AMR) 등의 수입·유통·판매를 제한하면서 이미 수출이 중단되거나 계약 이행 여부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국내 기업이 나오고 있다.
이번 조치는 중국산 첨단 로봇을 염두에 둔 규제로 알려졌지만 적용 범위는 중국 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밖에서 생산된 규제 대상 로봇에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 역시 동일한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미국 현지 생산과 부품 공급망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중소 로봇 기업에는 미국 시장 진입 자체가 한층 복잡해질 수 있는 사안이다.
7월 28일부터 외국산 첨단 로봇 신규 승인 규제
FCC가 지난 7월 발표한 조치에 따라 7월 28일부터 신규 승인을 받지 않은 첨단 로봇은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유통·판매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대상에는 추진력과 원격 조작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사족보행로봇, 자율주행로봇(AMR), 무인운반차(AGV) 등이 포함된다.
AMR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면서 스스로 이동 경로를 판단해 작업하는 자율주행 이동 로봇을 뜻한다. AGV는 공장이나 물류 현장에서 물품을 운반하는 무인운반차다. 이들 장비는 제조·물류 자동화 과정에서 활용되며, 국내 로봇 기업들도 미국 시장을 주요 수출 대상으로 개척해 왔다.
문제는 규제가 특정 국가의 로봇만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보내는 제품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미국 고객과 협의를 진행했거나 계약을 확보한 기업도 규제 요건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제품 성능이나 가격 경쟁력만으로 미국 수출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수출 중단, AMR·AGV 기업도 영향권
삼성전자 자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동형 휴머노이드 로봇 RB-Y1을 미국에 수출해 왔지만 FCC 규제 이후 대미 수출이 중단됐다. 북미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수십 대 규모의 수출 계약도 멈춘 상태다. 규제 요건을 어떻게 충족할 수 있는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향후 수출 재개 시점 역시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첫 수주에 성공한 국내 AMR 업체 A사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해당 기업은 산업통상부와 한국AI·로봇산업협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에 대응 방법을 문의했지만 명확한 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첫 미국 수주라는 사업 기회를 확보하고도 실제 제품 공급 단계에서 규제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티로보틱스 역시 미국 공급 계약과 규제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티로보틱스는 지난 6월 포드 에너지 배터리와 약 150억원 규모의 무인운반차(AGV)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공급 지역이 미국이며 계약 기간은 2028년 6월까지다. 이에 따라 장기간 진행되는 계약에 FCC 규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할 필요가 생겼고, 회사는 법무팀을 중심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 사례가 주목되는 이유는 규제가 앞으로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고객을 확보했거나 공급 계약을 체결한 기업도 제품 유형과 생산지, 공급망 구성, 승인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수주에 성공한 뒤 실제 납품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규제 대응 단계가 추가된 것이다.
미국 생산에 미국산 부품 65% 조건까지 부담
규제 적용을 피하기 위한 조건도 국내 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 예외를 적용받으려면 미국에서 제조하면서 부품 공급망의 미국산 비중을 65%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 이 기준은 2029년부터 75% 이상으로 높아진다.
따라서 단순히 미국에 조립 시설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기는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미국산 부품 비중까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에는 모터와 센서, 감속기 등 다양한 핵심 부품이 사용되며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일본·중국·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특히 국내 중소 로봇 기업이 규제 대응만을 목적으로 미국 제조 시설을 새로 구축하려면 시간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다시 구성해야 하는 문제가 더해진다. 미국산 비중을 65% 이상 확보하고 이후 75% 기준까지 준비하려면 생산 장소 변경뿐 아니라 부품 조달 구조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
이 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대응 여력 차이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법무·인증·공급망 관련 전문 인력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과 달리 인력과 자본이 제한된 중소 로봇 업체는 규정 검토와 신청 자료 준비부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시장에서 실제 수주를 확보했더라도 규제 대응 비용과 절차가 새로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2028년 조건부 승인 신청이 핵심, 정부 지원 요구 커져
미국 현지 생산과 공급망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기업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은 조건부 승인을 받는 것이다. 첨단 로봇을 미국에 계속 수출하려는 기업은 2028년 1월 1일까지 미국 전쟁부에 조건부 승인 신청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이 이 절차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국내 업계의 고민이다.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기업의 지분 구조와 공급망 관련 자료 등을 준비해야 하고 인증과 심사 절차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업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이라면 규정 해석부터 필요한 서류와 대응 방식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산업통상부와 유관기관이 공동으로 기업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기업별로 규정을 해석하도록 맡기는 대신 규제 적용 여부와 승인 절차, 준비해야 할 자료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원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국내 기업이 적용받을 수 있는 면제 또는 대응 방안을 확인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된다.
미국에 로봇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 관계자 역시 개별 업체가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지분 구조와 공급망 자료를 준비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있다고 지적하며, 인증과 심사 과정을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창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FCC 규제의 핵심은 한국 로봇의 기술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생산지와 공급망, 승인 절차가 미국 수출 조건으로 추가됐다는 점에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처럼 실제 수출이 중단된 사례가 발생했고, 미국에서 첫 수주를 따낸 AMR 업체와 장기 AGV 공급 계약을 확보한 티로보틱스도 대응 필요성이 생겼다.
앞으로 국내 로봇 기업에는 자사 제품이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는 것과 함께 미국 생산 및 부품 비중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지, 조건부 승인 절차를 이용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정부와 유관기관에는 기업별 대응을 지원할 구체적인 절차와 창구를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을 주요 성장 무대로 삼아온 국내 로봇 산업에 이번 규제가 실제 수출 계약과 공급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다음 확인 지점이다.